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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치는 비열한 소극(笑劇) - 오피니언 Scrap



김승일 칼럼. 전북일보, 2012.02.20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의 49재가 엊그제 치러졌다.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많은 정치인들이
구천으로 떠나는 그의 혼백을 경건히 전송했다.
 이로써 한 시대를 풍미했던 민주투사의 큰 족적은
 역사의 뒤안길로 영원히 사라지게 됐다.

고백하건대 나는 고인과의 우연찮은 만남에서 부끄러운 기억을 갖고 있다.
지난 2001년 작고한 전북일보 서정상 회장의 장례때 얘기다.
당시 장의위원이었던 나는 문상을 온 고인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그가 내게 물었다.
 "전북일보는 트리뷴입니까 헤랄드입니까.
아니면 포스트입니까." 순간 나는 당황했다.

보통이라면 "신문 부수는 얼마나 되고 조간입니까
석간입니까"정도가 아닐 것인가.
그런데 난데없이 트리뷴이니 헤랄드니 하니 순간 답이 막힌 것이다.
 지역신문의 역할 운운 한 후 화제는 바로 바뀌었지만
훗 날 당시 즉답을 하지 못한것을 생각하면 두고두고
낯이 화끈거리고 한편으로 부아가 치밀기도 했다.

참고로 트리뷴(Tribune)은 고대 로마의 호민관 또는 민중의 지도자를 뜻하고
 헤랄드(Herald)는 전달자, 예고(豫告)란 뜻이다.
뉴욕 헤랄드나 시카고 트리뷴 같은 미국 신문의 제호에 인용된 단어다.
워싱턴 포스트니 뉴욕 타임즈도 같은 의미다.

고인은 이처럼 사소한 대화에도 지성의 냄새를 풍기는 선비 스타일이었고
냉철한 판단력과 논리로 무장한 토론의 달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청렴한 원칙주의자라는 별칭을 항상 달고 살았다.

2003년 참여정부가 들어선 후 그는 권노갑 민주당 전 고문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양심고백하여 큰 파문을 일으킨 일이 있다.
 당시 정치권은 권고문이 현대로부터
200억원의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설(說)로 시끄러운 때였다.
권고문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그의 고백으로 정치자금 수수설은 사실로 드러났고
 고인은 결국 정치자금법 위반혐의로 기소되어 벌금 500백만원에
추징금 2천만원을 선고 받았다.
그가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위해 양심고백한 점이나 청렴성은 인정되지만,
실정법을 위반한데 대해서는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게 재판부의 설명이었다.

이 판결후 나는 라퐁텐의 우화 '사자의 정의'를 인용해 그의 용기를 찬양한 바 있다.
힘 없는 노새가 사자의 논리로 희생의 제물이 됐다는 비유다.
여기서 우리는 라퐁텐의 우화를 다시 새겨보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정치자금에 관한한 사자왕이나 여우나 노새나 그 누구도 자유로울수 없다.
몇천억원씩을 챙겨 비자금의 원조가 된 전두환 노태우에 이어
이나라 정치판에서 정치자금에 자유로운 정치인이 몇이나 될까.
단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남의 땅에서 풀을 뜯어먹은 죄'로
그는 희생물이 된 가련한 노새에 불과했던 것이다.

지금 노새를 향해 일제히 '유죄'를 외쳤던 정치권에서
또 다시 탐욕의 돈봉투가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그 중심에 권력을 쥔 '사자왕'무리들의
비열한 술수가 춤을 추며 한 편의 소극을 연출하고 있다.
집권후 권력을 손에서 놓은 노무현은 그 돈 때문에
스스로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 내렸고 가련한 노새는 구천으로 돌아갔다.
 '맨 먼저 걸치고 가장 나중에 벗는 영혼의 속옷'이라는
 명예마저도 팽개친 그 들, 이제 어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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